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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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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기본 습관

누가복음 6장 37~42절 (예정교회 설동욱 목사 설교)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기본 습관

사람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위치에서 놓고 볼 때,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정확히 알고 고치는 사람은,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습관을, 정당화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이, 함께 대화가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문화 충돌입니다. 너무나 다른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백년대계라 해서 멀리 보고 큰 계획으로 움직였기에, 교육의 큰 틀이 바뀌지 않았지만, 지금은 탈바꿈이 이루어져, 모든 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어른들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도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 있게 선포해야 할 목사이기에, 나를 쳐서 복종할 때가 많습니다. 요즈음 주의 종들도 과거 우리 때와는 너무 다릅니다. 목회충돌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부목사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때가 많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위치에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이 있을 것이요, 교회에서도 져야 할, 무거운 짐이 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고쳐야 할 금기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은,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냥 봐 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27절-36절을 통해서 말씀하신 ‘원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로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타인을 대할 때, ‘사랑’이 가장 우선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원수일지라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나쁜 습관을 지적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단점입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마치 자기는 의인인 것처럼, 착각하는 가장 나쁜 습관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탄의 습성이 이런 것입니다. 이런 악한 습관의 고리를 우리는 끊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고쳐야 할, 악습이라고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이, 마땅히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라면, ‘남을 판단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버려야 할 “금기 사항”입니다. 그렇다면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이런 나쁜 버릇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를 살펴보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남을 판단할 위치에 있기 이전에,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누구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본문 3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간단하게 “비판”을 금하고 있습니다. ‘비판하다’는 말은, 문자적인 번역으로 ‘판단하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은 악과 벌을 집행하는 사법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자기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면서, 마치 자기는 의로운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남을 판단하는 것을 못하게 “비판치 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것은 남을 판단하면, 자연히 그 사람을 정죄하게 되기 때문이요.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정죄하게 되면, ‘용서’라는 복음이 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신 관계에 있어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믿음”이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용서라는 미덕이 없이는, 가족관계나, 친구 관계나, 이웃 관계나 할 것 없이, 어떤 관계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자가 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그 사람을 기피하게 됩니다. 결국 판단은 관계의 파괴를 가져옴을, 예수님이 교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면, 너희도 비판을 받지 않고, 정죄도 받지 않고, 용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게 되는 어떤 공로는 아닙니다.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미 용서받은 의인은,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당연한 자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받은 의인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까닭에, 그 감격 때문에,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고,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상대방을 사랑할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체험을 못한 사람은, 사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도, 사랑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는 자리에 있습니다. 결국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자기가 하고 있는 영적교만인 것입니다. 우리 예정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의인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실천함으로서,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이 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대인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판단이 아니라 배려입니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배려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잘 베푸는 자가, 넉넉한 인생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 누리는 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서 대인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본문 38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간단명료하게 명하신 예수님께서, 그 대신 대인관계의 원칙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만날 때, 판단을 하기 보다는,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나, 함께 하는 공동체의 지체나, 함께 일을 하게 될 때나,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나로 인해 채워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든 자가 있을 때, 그 사람이 마치 잘못 살아서 병든 것처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그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줘야 합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그렇다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대신, 그가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주면서, 위로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는, 구제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베풀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사항은, 값없이 조건 없이 주어야 합니다. 당사자에게 돌려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손길을 통해서 반드시 갚아 주시는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쌀을 사면, 10킬로, 20킬로, 40킬로 이렇게 킬로로 사지만, 과거 저희가 어렸을 때는 됫박으로 팔았습니다. 쌀을 됫박으로 사면 후한 사람은 쌀을 흔들어 넘치도록 줍니다. 그런데 야박한 사람은 살살 펴서 대를 깎아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푸는 자에게 돌려주실 때는, 야박하게 깎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해서, 돌려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헤아리는’ 것은 남에게 줄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남에게 주는 것으로 반드시 돌려받습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돌려받지만, 판단을 주면 판단으로 돌려받습니다. 비판을 주면 비판을 돌려받습니다. 이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내가 심는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도, 내가 얼마나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는지, 혹시라도 내가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남편이 돈 못 벌어 온다고 비판하는 대신, 그 남편을 오히려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다면, 그 가정은 분명히 더 화목해지고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부부대화법에서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주체가 되어서 말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왜 이제 와! 여태 뭐하다 이제 들어와!” 언성을 높이면서 다그치지 말고 “나 여태 당신 기다리느라 졸려서 혼났어.” 이렇게 얘기하면, 남편이 “기다리지 말고 자지 그랬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당신이 걱정이 되어서 내가 어떻게 자.”이런 식으로 자신을 주체로 대화를 풀어나가면, 남편은 속으로 감동받고 일찍 들어오고 싶어집니다. 그런 아내이면 일찍 들어오게 됩니다. 혹시 늦더라고 전화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그치거나 자꾸 따지면, 남편은 자꾸 거짓말하게 되고, 아예 전화를 꺼버립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여전도회나, 남전도회에서, 누구는 열심히 봉사하는데, 누구는 하지 않는다고 비교하면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여전도회나 남전도회는, 분위기가 살벌해집니다. 그러나 약한 믿음의 성도라 할지라도, 오히려 다가가서 따뜻하게 권면하고, 성숙된 믿음의 본을 보여주면, 그 여전도회나, 남전도회는, 사랑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여전도회나 남전도회가 됩니다. 이처럼 남에게 주는 것을 습관화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끝없이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이 두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남을 함부로 내 잣대로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그야말로 내 신앙과 삶의 품격이, 모두가 존경하는, 본받고 싶은 모습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3. 남을 판단하는 눈을 내 자신을 판단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이 판단을 잘 한다는 것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능력을 자신을 판단하는데 사용하면, 큰 유익을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 39절- 40절을 통해, 남을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딜레마를 지적했는데, 그것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9-4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 딴에는 남의 잘못을 지적해서, 바로 잡아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소경이라는 데 있습니다. 똑같은 처지에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도 별 신빙성이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또 40절에 보면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은 다릅니다. 오늘날은 수많은 컴퓨터에 내장된 정보와 책을 통해, 제자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요즈음 대학교수의 논문표절을 봐도, 제자들이 쓴 것을 자기가 한 것처럼,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는 현실을, 매스컴을 통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는, 정보전달이 미개했기 때문에, 학생은 선생이 가르쳐주는 만큼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일 많이 배운다 할지라도, 선생님과 같을 수는 있어도, 넘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남을 판단하는 자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하니, 결국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소경이랑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41절-42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들보’는 통나무로 건축할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지르는 나무를 말합니다. 물론 통나무가 사람의 눈 속에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설사 자기 눈 속에 통나무가 박혀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예배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졸면서, 눈에 통나무를 박고 있으면서, 자기 목장식구가 예배에 조금만 늦어도, 상대방의 사정은 조금도 고려치 않고, 대뜸 ‘요즘 신앙생활이 약해지는 것 같아.’라고 핀잔을 주면서, 그 교인의 티를 지적하는 사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작은 말 때문에 상대방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자기 잘못을 살피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남의 잘못을 찾는 데는 전문가들입니다. 인터넷네티즌 수사대나 악플 다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던지는 돌에 맞은 개구리에게는, 생사가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월권 행위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다 장차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자들이지, 심판할 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남을 정죄하기 전에,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려는 그 눈으로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는 자를,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 뒤에, 바로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 자신도 헤아림을 도로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풀면 사랑으로 돌아올 것이요, 용서를 베풀면 용서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요, 물질을 베풀면 물질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요, 기도를 베풀면 응답으로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저와 여러분의 악한 습관의 고리를 끊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좋은 습관은 말씀을 읽는 습관과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설교 듣는 것보다 더 좋은 습관이, 말씀을 읽고 조용히 묵상하면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 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서 말씀을 통해 만져주시는 예수님의 반응을 체험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크게 활용하고, 감추어진 여러분의 달란트는, 섬김과 나눔을 통해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날이 옵니다. 그날에 부끄럽지 않는 승리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늘 깨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포제일교회,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감사예배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김포제일교회,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감사예배

왼쪽 김포제일교회(정운락 목사), 오른쪽 김포중앙교회(원로 박영준 목사)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역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다. 이 구원의 역사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성문 문장의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전을 통해서 전달됐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사를 주신다.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은 그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계시를 전달한 선지자들은 한참 후에 기록으로 보존하고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이러한 전달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를 자녀들에게 전달한 의무가 있다. 부모를 거역한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한 것과 같다. 그래서 부모를 거역한 자들에게 엄중한 심판고 징계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옛날의 역사와 연대는 바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였으며 이를 자녀들에게 전달하고 교육해야 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었다. 그래서 자녀들은 이러한 역사를 부모에게 물어야 했으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과거 하나님 계시의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조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신앙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였으며, 그러한 삶의 목표를 갖고 살았다. 왜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동시에 이 땅에서 전개된 교회의 역사를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가? 그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섭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아는 만큼 느끼고 체험하게 되어있다. 그러한 체험은 우리들의 신앙을 풍요로운 은혜 가운데로 인도한다. 김포지역은 금년(2019)으로 125년 역사의 갖고 있다.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전해진 때가 1884년 9월 20일이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알렌선교사가 제물포에 입국하는 날을 기념하여 이 땅에 개신교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5주년이 된다. 김포지역은 한국에 복음이 전래 된지 9-10년 후였다. 외국의 다양한 교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선교 과열을 막기 위해 선교지역을 분할하였다. 이를 선교분할정책이라 한다. 김포지역은 당시 미국 북장로회 선교지역이었으며, 미국의 남장로회 선교회는 호남지역을 선교지역으로 하였다. 부산을 비롯한 영남은 호주장로회의 선교지역이었다. 1885년 4월 5일에 입국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 소속 미혼인 언더우드 선고사가 입국하여 김포지역은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선교지역이었다, 김포지역은 금년으로 선교 125주년이 된다. 그런데 김포선교 개시년도를 김포제일교회와 김포중앙교회는 동일하게 125주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훗날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훗날 연구논문으로 남기고 일단 두 교회가 3월 첫주일인 지난 3일 주일에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포제일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 김포제일교회는 지난 3월 3일 주일 오전 11시 30분에 신명기 6:20-25절 말씀을 통해 담임인 정운락 목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설교를 마친 후에 축하 케익 커팅식을 갖기도 했다. 김포제일교회는 125주년 기념감사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한 행사를 거행하지 않았다. 김포제일교회는 특별하게 125주년을 기념할 만한 역사 기록물이 출판되지 않았다. 소중한 유산을 간직하면서 그 소중한 역시의 기록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현 부지를 기증받아 오늘까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김포 걸포공원에 있는 언더우드 기념 조형물을 방문하여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현장 답사하는 행사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포제일교회가 아니더라도 이 역사의 현장 기록을 누군가가 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자들이 있으리라 본다. 사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일부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 같은 주일 오전 11시 30분에 김포중앙교회(담임 정재화 목사) 역시 교회 설립 125주년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포중앙교회도 김포제일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어디에서 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주일이라는 포스터 한 장 없었다. 역사에 대한 무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실이었다.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이란 말은 사회자의 기도 속에서, 대표기도자의 기도 속에 설교자의 설교 도입부분에 교회가 설립된지 125주년이라는 이여기가 전부였다. 이날 설교는 박영준 원로목사가 본문 에베소서 4:1-6절 말씀을 통하여 ‘힘써 지키십시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주일 오후에 항존식 임직식을 갖기도 했다. 김포중앙교회는 통합측 교단에 소속된 교회이다. 김포중앙교회는 김포제일교회와 그 뿌리가 동일하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1950년대에 크게 3번의 분열이 있었다. 1951년은 고신측과의 분열, 1953년에는 기장측과의 분열, 1959년은 통합측과 합동측과의 분열이 있었다. 1959년 제44회 총회시에 분열된 이후 김포읍교회(김포제일교회)에서 1962년 4월에 불면리에 교회당을 마련하여 시작한 교회가 김포중앙교회이다. 김포중앙교회는 김포제일교회와 역사를 공유하며 동일하게 1894년 3월 3일을 교회 설립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 1894년 3월을 설립일로 정한 근거로는 「朝鮮耶蘇敎長老會長老會史記 上」에 기록이 전부다. 그러나 이 기록이 김포읍교회의 설립일에 대한 근거가 되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 적어도 김포지역은 125년 동안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준 복음이 오늘의 풍요로운 축복받은 땅, 축복받은 교회들로 성장케 해 주셨다. 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김포지역 선교 125주년 기념 필자는 두 교회의 설립 125주년 주일 감사예배를 드린 후에 김포 걸포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언더우드 기념 조형물 현장을 방문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특히 기념 조형물을 건립하는데 협조한 분들에게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김포지역 선교 125주년을 기념하면서

김포지역에 125년 전에 복음을 허락하신 하나님 축복의 땅이 되게 하소서

김포지역 선교 125주년을 기념하면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것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팩트가 달라진다. 구술로 전해지는 역사적 사건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연대기와 그 사건들이 전승된다. 우리나라 선교는 개신교회보다 가톨릭교회가 100년 이상 앞선다. 가톨릭교회의 100년 동안의 선교 위에 개신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 복음의 전래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선교사들의 한글어 어학선생은 가톨릭교회나 그 단체에서 유급으로 사역하였던 자들이 개신교 선교사들의 어학선생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김포지역의 개신교 선교는 아주 독특한 선교지역이 되었다. 초기 선교사들은 젊은 나이에 피선지인 조선에 입국하였다,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26세,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27세, 헤론은 28세, 스크랜톤은 29세, 게일은 25세에 한국에 파송되었다. 이들의 선교열정은 대단했지만 경험은 부족하여 선교 경험이 풍부한 선교사를 통해 선교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마침 당시에 이들에게 다가와 선교의 경험을 이야기 해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하고 북장로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만주 산동성 지푸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 선교사였다. 한국에 파송된 미국 북장로교 소속7명의 선교사는 1890년 6월 그를 초청하여 2주 동안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세미나를 통해 네비우스의 25년 동안의 체험에 입각하여 젊은 선교사들에게 주요 원리에 대한 사고의 씨를 심어 주었다. 네비우스는 중요한 선교의 원리로 모든 신자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전도하며 사역을 확장 시키는 자전(self-propagation), 모든 그룹은 선임된 무보수 영수의 관할을 받으며, 순회 교구들은 나중에 목사가 될 유급 조사들의 관할을 받는 자치와 자치(self-government), 신자들이 스스로 마련한 예배 등을 소유하며, 각 그룹은 창립되자마자 순회 조사의 봉급을 지불하기 시작하며, 개교회의 목사에게 외국의 자금으로 사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자립(self-support) 등이었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네비우스 선교사로부터 교육을 받는 사상이 바로 자전, 저치, 자립이었다. 이같은 교육을 받은 해가 1890년이었으며, 이러한 선교전략에 따라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에게서 교육을 받은 조사들과 일반 신자들을 김포로 보내 선교활동을 하게 하였으니 그 해가 바로 1894년이었다. 김포지역은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가 아니라 그 선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은 조사나 신자들이 김포지역에서 자전, 자치, 자립에 의해 선교가 진행된 아주 독특한 지역이다. 김포지역에 선교를 개시한 날이 곧 김포제일교회와 김포중앙교회의 설립일을 의미하지않는다. 김포제일교회나 김포중앙교회는 공히 교회를 설립기념일을 1894년 3월 3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이날은 교회가 설립된 날이 아니라 김포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는 기념의 해이다. 김포지역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지는 그 날을 두 교회가 설립일로 정하고 있다. 1894년 3월을 설립일로 역사 기록은 「朝鮮耶蘇敎長老會長老會史記 上」에 기록을 유일한 그 근거로 삼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시년(是年)에 선교사 원도우(元杜尤)난 전도의 방침을 확장하야 서상륜 김흥경 박태선 유흥렬 등으로 경성 근방에 전도케 하고 신화순 도정희 이춘경(李春景) 등으로 고양(高陽) 김포(金浦) 등지(等地)에 전도케 하니 동시(同時)에 사오처 교회가 신설 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원더우드 선교사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따라 경성 근방과 고양과 김포에 전도케 하였다는 사실과 교회가 사오처교회가 세워졌다고 기록하지만 정확히 어느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기록은 없다. 이 기록에서 김포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분명하게 김포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기록은 「朝鮮耶蘇敎長老會長老會史記 上」의기록에 의하면 1897년이라고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1897 정유 시년에 ⋯김포읍교회(金浦邑敎會)가 성립(成立)하다. 선시(先是)에 고양군 세교교인(細橋敎人) 거군보(高君甫)와 기처(其妻) 박철라미(朴撤羅米)가 당지(當地)에 도(到)하야 열심전도하으로 본읍인(本邑人) 천덕현 이봉춘과 걸포(傑浦) 리인(里人) 유공선 박성삼 황춘근 유중근이 시신(始信)하고 유공선 사저에셔 회집예배하더니 지시(至是)하야 시나가 일증(日增)하야 300여인(三白餘人)에 달한지라. 동심협력하야 본읍 서리(西里)에 16간 가옥을 매수하야 예배당으로 사용하니 당시 조사(助師)난 홍성화 추후(追後) 타락(墮落)함이러라. 김포지역의 최초의 교회는 ‘김포읍교회’였으며, 설립 시기는 정확히 1897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이 없다면 1894년에 김포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막연하게 경성 부근과 고양과 김포에 전도하여 4-5개처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1894년의 기록에서 김포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는 근거가 약하다. 「朝鮮耶蘇敎長老會長老會史記 上」는 1928년에 출간되었지만 그 준비는 1916년 제5회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부터 진행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장로교 교단총회의 공적 기록이다. 편집위원은 총회가 임명한 마포삼열 선교사를 비롯한 길선주, 이눌서 김인전 공위량 곽안련, 함태영 등 14인이었다. 교회 설립일은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에 선교가 시작된 그 날이 곧 교회 설립일은 아니다. 장로교 정체에 있어서 교회 설립은 소속 노회의 권한이다. 공식적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권한은 노회이다. 그러나 1894년은 아직 노회가 조직되기 전인 선교사 공의회 시대(1893-1900)이다. 적어도 1916년에 편집을 결정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5회 총회 결의로 공적 기록물이다. 이 기록을 객관적 타당한 기록으로 보기 때문에 1897년이 김포제일교회와 김포중앙교회의 설립일이 된다. 그러나 두 교회는 1894년을 설립일로 지키며너 2019년 3월 3일은 첫주일에 125주년 기념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포지역의 선교 125주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 기록이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공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포지역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열매로서 우리 민족인 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선교가 시작되었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데 의의가 있는 지역이다. 김포지역에 복음을 허락하시고 125년 동안 김포지역을 복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통일한국 시대에 축복의 땅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김포언더우드역사문화연구소 소재열 목사(한국교회사 Ph.D.)

목회자 자녀는 아픔이 아닌 축복입니다

목회자 자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았어요"

목회자 자녀는 아픔이 아닌 축복입니다

오직 목회자자녀들만을 위한 축제인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가 지난 2월 18일(월)부터 20일(수)까지 경기도 남양주 다산 신도시에 새롭게 건축한 예정교회 다산성전(설동욱 목사)에서 개최해서 은혜중에 마쳤다. 한국지역복음화협의회(총재 피종진 목사 대표회장 설동욱 목사)와 목회자사모신문(발행인 설동욱 목사)이 공동으로 주최했고 CTS기독교TV, CBS, febc극동방송, 국민일보, 예정교회가 공동으로 후원하여 진행됐다.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는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자녀들이 모습은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위로받고 서로가 각기 다른 모습 속에서 살아가지만 목회자자녀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되어 주님을 높이며 큰 은혜를 받았다. 목회자사모신문 주최의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는 기쁨의 웃음과 회개의 눈물 그리고 특히 자신과 부모님을 위한 간절한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세미나였다.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참았던 눈물과 그들의 마음을 한층 가볍게 해 줄 웃음 그리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 비전과 결단이 넘치는 세미나로 진행됐다. 목회자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그동안 혼자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며 상실했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했는데 서로 만나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받았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특별한 경험들을 나누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치유를 경험했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목회자 자녀 서로 간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금방 사라지고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나눔이 풍성하고 깊어졌으며 친형제와 자매 같은 친근함을 형성하게 됐다. 특히 목회자 부모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그들이 세미나를 통해서 목회자자녀는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섬기는 교회 부모님의 목회를 위해 기도할 때는 참석한 대부분의 자녀들이 뜨겁고 마르지 않는 눈물로 기도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첫날 저녁 강사로 말씀을 전한 이성재 목사(한올교회)는 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사역했던 그 관심으로 청소년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배어있는 설교를 통해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두 번째 날 오전에 강의한 오선화 작가(너는 문제없어, 성경 태교 동화 등 저술)는 마치 오래된 좋은 선배처럼 친근하며 작가 특유의 매력적인 화법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자신의 성장기동안 겪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라고 전했다. 특히 목회자자녀들이 자신의 외모나 다른 외향적인 환경과 배경에 자신이 없을지라도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나누었다. 허동석 목사(주품에 교회)는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이 친자녀인 듯이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전파했는데 특히 허 목사의 자녀들이 어린 시절 일반성도 자녀에게 맞고 다니는 이유가 그 아이를 이길 수 있는데도 목사 자녀가 때려서 아이와 부모 성도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맞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아이와 함께 많이 울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은혜를 전했다. 특히 두 번째 날 마지막 저녁 시간에 말씀을 전한 다니엘 김 선교사는 목회자자녀라는 것이 상처와 아픔일 수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목회자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고 마냥 부러운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목회자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전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심이 회복의 시작이 된다며 열정적인 말씀을 전했다. 목회자자녀세미나 출신 스텝들로 구성된 찬양팀과 전체 진행팀은 은혜로운 찬양과 무엇보다 참석한 자녀들의 여러 필요를 세밀하게 채워주었고 참석한 자녀들을 소그룹 팀으로 구성하여 진솔한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미나로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본포제일교회 김창서 자녀는 “세미나에 처음 왔는데 이곳에 와서 찬양을 부르다가 눈물이 터졌는데 이 눈물이 주님을 위한 눈물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참석 소감을 전했고, 하늘문교회 진명언 자녀는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가운데 있는 친구들의 간증에 내가 너무 사랑받고 자란 자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했다. 새사랑교회 소명은 자녀는 “저도 모르게 예배 시간에 눈물이 났고 공감되며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을 모임 시간에 더욱 친해질 수 있었고 같이 더욱 위로를 해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했고 정산중앙교회 이은총 자녀는 “시골에 살아서 주위에 목회자 자녀가 한 명도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 자녀들과 공감하게 하시고 눈물 흘리게 하셨습니다. 나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라고 했다.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를 총괄 진행한 목회자사모신문 발행인 설동욱 목사(예정교회)는 “히브리서에 보면 모이기는 폐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갈수록 기독교 단체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또는 수련회 등에 참석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목회자자녀세미나는 더욱 모이기가 어려운 상황과 환경임에도 섬기는 스텝까지 이백명의 목회자자녀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통해 치유받고 살아갈 힘과 비전을 세우는 세미나가 되었습니다. 목회자자녀세미나를 진행할 때마다 이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은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회개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주시며 세미나 기간동안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려 드리며, 앞으로도 목회자사모신문을 위해서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며 특히 6월에 예정교회 다산 새 성전에서 진행될 전국목회자사모세미나를 위해서도 기도와 참석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라고 전했다.

2019년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사업 안내

2019년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사업 안내

2019년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사업 안내

2019년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사업 안내 1. 지원대상 : 2019.1.1 이후 출생아 -‘19년 신생아 출생일 기준, 부 또는 모가 1년 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에 주민 등록을 두고 거주한 출산가정 ※ 1년의 산정 기준 : 출산일 미포함하여 산정(예시 : 2019.1.1. 출산은 2018.1.1.(포함) 이전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야 함) * 소득수준 무관, 부부 중 한명은 반드시 대한민국 국적(주민등록) 소지자 * 혼인 관계가 아닌 경우, 주 양육자(부 또는 모)의 자격을 확인하여 지원 - 예외지원 가능 대상 : 부부가 외국인 경우 출산자(모)의 국내 체류자격 비자(사증) 종류가 F-5(영주)이며 1년 이상 도 내지속 거주한 경우에 한함. ※ [참고]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별표1(외국인의 체류자격)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지원 및 해산급여 수급권자와 중복 지급 가능 2. 신청기간 : 출산일(포함) 기준 12개월 이내 (예시 : 2019.1.1. 출산 한 경우, 2019.1.1. ~ 2019.12.31.까지 신청 가능) 3. 신청기관 : 출생 신고하는 관할 주민센터 ※ 타 주민센터 신청 불가 ※ 외국인 : 출생아 외국인등록 사실증명서의 첫 거주지 등록 관할 주민센터에 신청 4. 신청방법 - 부 또는 모가 (신생아 출생등록 하는) 시·군 관할 주민센터에 신청 ※ 산모, 산모 배우자, 산모 친부모 및 시부모가 신청가능, 예외지원(F-5) 외국인은 산모만 신청 가능 - 부 또는 모의 도 내 거주지가 다를 경우 한군데에서 1회 지원 5. 지원금액 - 출생아 1인당 50만원(지역화폐) 지원 - 다태아의 경우 출생아 수에 따라 50만원의 배수로 지급 (쌍둥이 100만원, 세쌍둥이 150만원, 넷쌍둥이 200만원) 6. 지급시기 : 지역화폐 발행 전까지 지급이 유예되며 발행 이후 지급안내 및 사용법 안내 예정 (‘19년 4월이후 예정이며 발행에 따라 변동될수 있음) 7. 제출서류 * 신청인 또는 대리 신청인의 신분 확인(주민등록증 등) ※ 대리 신청 : 신청인과 대리인의 관계 확인 서류 필요 (예 : 가족관계증명서 등) * 신청서 각 1부(접수기관 비치, 출산서비스 통합지원 서식 활용) * 주민등록 등·초본 1부(1년 이상 도 내 거주 확인) * 출생증명서 1부(출생신고 시 신청하는 경우 갈음) * 가족관계증명서 1부(부부관계, 대리인과의 관계확인) * 영주권자(F-5) : 외국인등록 사실증명서(출산자, 출생아 거주지 변동 내용 포함) 1부 출생증명서(출산자의 외국인등록번호 필수 기재) 1부 ※ 접수 시, 추가 확인이 필요한 경우, 기타 서류를 요구할 수 있음, (외국인 국내거소 신고 사실증명서 등) ☎ 문의 : 보건소 (031-980-5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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